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미군 (문단 편집) === [[병영부조리]], [[프래깅]], [[인종차별|인종갈등]] === [[징병제/미국|미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병역이 징병제]]였고, 베트남 전쟁은 미군 역사상 가장 [[구타]]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가 심했던 시기와 겹쳤다. [[일본군]] 수준까진 아니지만 최소한 [[530GP 사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국군]]이 떠올라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 내지 그 이상은 되는 병영 분위기였다. 간부들은 폭력과 폭언으로 병사들을 다스렸고,[* 괜히 영화 [[풀 메탈 자켓]]에서 하트먼 상사 같은 캐릭터가 나온 게 아니다.]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을 놀려먹거나 괴롭히거나 구타하기 일쑤였다.[* 첨언하자면 한국 해병대의 태권도 시범을 본 미 해병대 베트남 참전자가 과거 한국군 특유의 구타 문화를 목도하고 그대로 본인의 중대로 도입했다는 참전 수기도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동시대 인종 문제와 맞물린 것도 있고, 병사들은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인 태도, 반권위주의적인 가치관이 퍼졌던 전후 세대인데 반해 장교들은 여전히 2차 세계대전 시대의 보수적 가치관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군 내부 세대갈등이 심했던 시절로 평가된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백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이 혼성 편제되던 시기였고 이 때문에 인종간 싸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며 심한 경우 아예 흑인, 백인끼리 안면몰수하고 따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전쟁 후로 갈수록 동고동락 개념이 생기면서 희석되기는 했지만 심각한 문제였다. 일례로 중국계 해병대원이 육군 헌병에게 베트콩이라고 조롱받자 동료 해병대원들에게 육군 헌병이 뭇매를 맞는 사건도 있을 정도였으니 심각하지 않았다고 말을 할 수 없다. 게다가 불량배, 전과자 등의 하류층 징집병들은 대학 출신 병사들을 컬리지 키드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는 나중에 미국사회의 해묵은 계층갈등의 씨앗이 된다.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은 징병제였지만 2차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된 때였고 미국의 설득으로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 했다가 침략당한 [[대한민국|신생국가]]를 [[김일성]]과 공산주의로부터 어떻게든 구해내야한다는 책임과 명분하에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단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한국의 공산화를 막자는 명분이 더 앞서서 군복무는 적극적으로 임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그런 명분조차 한국전쟁에 비해 매우 약했고, 결국 약한 명분에서 비롯된 개개인의 불만이 병영부조리를 증폭시킨 것이다. 위의 병영부조리 문제와 더불어 미국 내에서도 반전운동 여파와 여러가지 부정적인 일들도 크게 퍼져버리면서 '''[[프래깅]]'''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전쟁으로까지 언급되어버렸다. 1967년만 해도 공식적으로 800건이 넘는 프래깅이 적발될 정도[* 기간은 다르지만 좀 더 온건하고 확정적인 상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살해나 협박용까지 포함하여 미군 부대에서 [[수류탄]] 사고가 총 790회 발생하였고, 그 결과로 사망한 장교가 83명이나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우발적 사고를 포함하겠으나 수류탄으로 한정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록이라고 하겠다. 애초에 프래깅의 원 뜻도 '''수류탄을 사용한 상관 살해'''이다.]였으니, 미군 장교들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눈 앞의 적군보다 등 뒤에 있는 부하들을 무서워해야 했다.]] 일례로 1967년 11월 미군 헌병이 입수한 어느 포스터에는 베트남어와 영어로 어느 미군 대위 이름과 여러가지 신상명세, 심지어 주둔지 정보까지 써있고 적군들에게 "이 놈 죽이면 1,500달러 포상금을 선물하겠다"라는 말까지 쓰여있었다. 미군 측이 난리가 난 건 물론이다. 하지만, 헌병들의 수사에도 결국 이걸 만든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얼마 뒤 그 중대장은 기관총에 벌집이 된 시체로 발견된다. 헌병들은 미군 기지 안에서 등 뒤에 M16 총알로 벌집이 된 점을 주목했으나 부대원 전원이 적군 공격으로 죽었다고 주장하는 터라[* 당시엔 M16조차도 남베트남군에게 지원하다가 오히려 남베트남군이 빼돌려 팔아버린 경우가 많아서 이것만으로 아군에게 죽었다고 할 증거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등뒤에서 총알을 맞았다고 해도 전투 도중 늘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뒤돌아보던 터에 당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니 이것도 증거가 못된다.] 결국 전사로 처리되었다. 군대라는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폐해. 거기에 [[영관급 장교]] 이상의 상급 장교들은 사이공의 장교 클럽에서 휴가를 즐기고 더운 한낮의 땡볕을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보냈는데[* 당시 파병되었던 [[전두환]] 대령의 일화와 비슷하다. 전두환 대령 역시 [[무다구치 렌야|휘하 사병들은 물이 부족해 죽겠는데 본인은 매일같이 샤워를 했고 완전히 놀고 먹었다.]]] 이 판국에 [[위관급 장교]], [[부사관]], [[사병]]들이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